■ 유홍준 문화재청장 강연요지


한국인의 정체성에 관해 강조하고 싶다. 솔직히 얘기해서 한국 사람처럼 문화적 자부심과 열등의식이 혼재돼 살고 있는 민족은 지구상에 없는 것 같다. 문화적 자부심이 있으면 자부심으로 나가고, 열등의식이면 열등의식에서 '이러지 말아야 하겠다'고 가야 하는데, 잘났다고 막 얘기하다가 어떤 상황에 가서는 '조선 백성이 만든 게 다 그렇지 뭐' 하면서 확 떨어져 버리면 구제도 못한다. 자기변명이다.

왜 이런 일이 있었는가. 기본적인 것은 중국문화로부터 받았던 열등의식이다. 우리가 일본에 대해 얘기할 때 보면, 일본이 자기네들 문화를 당당하게 만든 것이 있는데, 그것을 단 한번도 존경해본 일이 없이 '그것 다 우리가 가르쳐 준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중국 사람은 한국에 대해 뭐라고 할 것인가? 전부 다 자기네들이 가르쳐줬다고 할 것 아닌가. 이것이 우리들이 갖고 있는 문화의 종주국이 돼보지 못했던 콤플렉스로부터 나온다고 본다.

문제는 패권주의가 횡행하다보니까 문화의 중심부에 있었던 중심 국가가 아니면 열등이 되는 것 같은 이상한 착각을 갖고 있다. 단호하게 얘기하건데, 대한민국은 단군 이래 오늘날까지 단 1초도 세계문화를 주도해본 역사적 경험이 없다. 그게 아쉬운 사람이 단군시대, 증명 안 되는 시대, '만주 다 먹었다', 이런 소리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나라가 왜 우리나라뿐인가. 지금은 지구 전체가 세계이지만 한 때는 문화권이 세계였다. 동아시아, 유럽, 이슬람 등 그렇게 문화권이 세계였다. 그 한 문화권에는 중심부 문화가 있고 중심부 문화, 주변부 문화가 어울려서 문화권과 내 문화를 형성해나가고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한 중심부 문화에서 일어난 새로운 문명은 주변부로 퍼져나가고, 주변부에서 자기 민족적 특성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전체의 문화권이 되는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 문화권이나 공통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라고 하는 것도 피렌체와 베네치아에서 만들어진 것이 독일과 네덜란드, 프랑스, 스페인, 영국으로 퍼진 것이 유럽의 르네상스의 역사다. 누가 써도 다 그렇게 써 있다. 그 과정에 네덜란드 르네상스가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모방했다고 흉보는 것 한 구절도 본 일이 없다.

우리가 중국의 문명을 받아서 산수화를 그리고, 청자를 본받아서 고려다운 청자를 만들고, 원나라 명나라 백자를 받아서 조선다운 백자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그 원류가 중국에 있었다고 하는 것이 그렇게 우리의 자존심을 깎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먼저 만들어서 준 경험이 없기 때문에 항상 사대주의에 대한 콤플렉스에 빠져 있고 어떻게 해서 남에게 영향은 못주고 남에게 의지해서 살았는가 하고 마음속으로 조상만 원망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참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중국의 한족이 대외정책에서 진시황 이후 한나라 때 흉노족이라는 민족의 방어 때문에 자기네들이 다 결속을 해놓고 만리장성까지 치면서 이민족을 야만화시키는 방법을 쓴 것이다. 자기들은 재벌화하고 나머지는 구멍가게로 만든 것이 한족의 외교정책이고 민족정책이었다. 그렇게 하면서도 맨날 당했던 것이 중국의 역사다. 그 결과 지금 중국은 90%의 한족과 10%의 55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돼 있는데, 55개 소수민족 중에서 모국어를 갖고 있는 나라는 조선족과 몽고족, 안남족, 셋 밖에 없다.

우리는 문명에서 낙오되지 않았고 끝내 살아남았다. 일본은 별도로 섬이니까 따로 칠 수 있고 우리가 역사 속에서 배웠던 선비족, 말갈족 등 다 없어지지 않았나. 중국 입장에서는 이 쪽 조선족이라는 것이 정말 골치 아팠다. 고구려를 멸망시키지 않고는 한족이 존립할 수 없으니까 수나라가 나라가 망하면서도 고구려와 전쟁을 치렀고 당태종이 신라와 연합해 온 것도 그것을 치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단동에 동쪽을 안정시켰다고 안동도호부를 두던 바로 그 해에 베트남에다는 안남도호부를 둔다. 이 남쪽과 동쪽 두 곳만 처리하면 자기들은 국방상에 더 이상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은 우리 영역은 그로 인해 한반도로 줄어들었지만 한민족이 갖고 있는 독자성은 계속 유지될 수 있었고, 중국은 단 한번도 우리를 식민지로 지배할 생각을 갖지 않았다. 그렇게 해봤자 '아웃 오브 컨트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나라 지배를 받은 것에 대해 책에는 대원제국 간섭기라고 하는 원의 사위나라가 되는 수모를 받게 됐다고 써 있다. 그것을 한 번 다시 계산해보자. 세계에서 가장 큰 대원제국, 징기스칸의 군대와 싸워서 이기지 못한 것은 일본의 경우 태풍이 그렇게 만든 것이고 베트남 하나는 이기지 못한다. 그 베트남족 못지않게 우리도 그 저항력이 강했다. 베트남족에게 유리한 것은 정글이 있었고 다 정글전에서 이긴 것이었다. 우리 고려 사람들은 몽고군이 보기에 세상에 이런 독종은 본 일이 없는 것이다. 딴 데는 가서 쳐서 이기면 항복하고 지배를 받았다. 우리는 와서 치니까 졌다고 그래놓고 강화도로 도망가서 다시 돌아가면 튀어나오는 등 말을 안 듣거든요. 27년 동안 7차에 걸쳐서 온다. 강화도로 도망가고, 진도로 도망가고, 제주도로 도망가면서 끝끝내 저항했다. 우리가 힘으로는 지지만 마음으로는 절대 승복할 수 없다고 하는, '질 수 없다'는 것을 27년 간 보여준다. 1차 침입 때 졌다고 지배받았으면 황룡사 9층탑도 불탈 일 없고, 아무 일 없었다. 그래도 자기의 자존을 지키기 위해 27년 간 싸웠다. 말이 27년이지 스무 살 때 전쟁한 사람이 47살까지 계속해서 싸웠던 것이다. 그 결과 원나라 정부에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으니까 '그래 알았다, 너희는 사위 나라로 삼아 주마', 그래서 왕자는 가서 교육을 받고 망건당에 가서 조맹부 같은 학자도 만나고 그리고 리모콘으로 여기를 컨트롤하는 것이었다. 저는 책에 쓸 때 그렇게 안 쓸 것이다. 27년 간의 피눈물 나는 항쟁의 결과 고려는 대원제국의 사위나라로 대접 받게 됐다.

인조대왕이 삼전도에 와서 무릎 꿇은 것에 대해 얘기 한다. 그 때 청나라는 조선이라는 국가를 해체시킬 능력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 명나라와 싸우는데, 우리가 종래에 외교관계를 명나라에 원조를 했으니까 이것을 차단시킨다는 다짐, 거기에다 주던 것을 우리한테 세금을 내라, 그 대신 인질 데려 간다, 그것으로 해서 갔다. 그 때 국가 해체할 수 있지만 해체해본들 다시 일어선다는 것을 청나라는 너무나도 잘 알아서 그냥 갔던 것이다.

우리가 이와 같이 독자적인 문화를 갖는 데에는 조상들의 엄청나 피눈물 나는 자기항쟁과 자기 자존의 힘이 있었던 것이다. 중국 사람이 뭐 하나 만들었다고 우리 이 것 만들었으니 너희도 쓰라고 가르쳐 준 것 단 하나도 없다. 소동파를 우리나라 문인들이 그렇게 좋아했지만 소동파 문집에 고려사람 조심하라고, 이 사람들 머리가 좋아서 뭘 그렇게 보기만 하면 컨닝해 가는지, 가면은 보고서 금방 만들어낸다고 했다. 그런데도 사신이 갔다. 그 문명을 받기 위해 간 것이다. 그래서 의생활을 개조도 하고 지식인 사회에 새로운 지식을 가져오고 그렇게 끝내 해온 것이 우리 역사 속에서 동아시아 문화를 만들었다. 중국 사람이 청자를 만들고 2백년 후에 고려 사람이 청자를 만든다. 이후 세계 어느 나라 사람도 청자를 못 만들었다. 만약에 고려 사람조차도 청자를 못 만들었으면 송나라 때 도자사(陶瓷史)는 굉장히 심심할 뻔 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삶은, 단적으로 얘기해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는 동아시아 문화의 당당한 지분율을 갖고 있는 주주국가다. 몇 퍼센트의 지분율이냐, 이 지분율을 액면가로 따질 것이냐, 실거래로 따질 것이냐는 따로 계산해야 할 것이지만 분명히 주주국가다. 일본도 몇 십 퍼센트 있고, 우리도 몇 십 퍼센트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오던 중국이 워낙 큰 덩어리가 돼서 19세기 올 때까지 유지를 했다. 그런데 중국은 역사 속의 반은 이민족, 반은 한족이 지배를 했다. 남북조시대에는 이민족이 지배를 했고 원나라 때 몽고족이 했고, 청나라 때 만주족이 했다. 그런데 꼭 한족이 지배했을 때의 중국의 면적은 이민족이 지배했을 때 면적의 반 밖에 안 된다. 그 이유가 청나라 사람들이 중국을 지배하다 보니까 주변의 이민족을 넓게 해서 너희도 '원 오브 뎀'이다,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 주변을 넓혔던 것이다. 그러니까 명나라 때 면적과 청나라 때 면적은 거의 배 차이가 난다. 그런 상태에서 모택동이 중국을 인수를 받았고 거기에다 플러스 티벳까지 한 사상 최대의 나라가 된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행운인지 부담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19세기 넘어서 문화의 중심부를 일본으로 넘기게 됐다. 그런데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이라고 말만 해놓고 만주를 괴뢰로 만들고 우리를 식민지 지배하다 35년 후 끝났다. 이것이 끝나고 나니까 이제 일본은 동아시아의 문화적 중심 국가가 되는 것을 도덕적으로 상실해버렸다. 그 때 문화적으로 지배했으면 지금까지 큰 소리 치는 것이었는데, 단기적으로 수탈해가는 것만 하다가 저렇게 돼놓고 지금도 선거에서 이기려고 야스쿠니 신사 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래봤자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절대로 주인공 노릇은 못하게 돼 있다. 중국은 5년, 10년 후면 우리 따라 온다 한다. 거꾸로 얘기하면 중국이 우리를 따라오려면 아직도 5년, 10년 남았다. 동아시아에서 주인 역할을 할 곳은 한국 밖에 남은 곳이 없다. 있다면 대만과 북한인데 그것으로서는 게임이 안 된다.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동아시아 물류 중심국가로 나아간다고 얘기했을 때는 그런 역사적인 상황의 변화를 인식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때 물류의 'ㄹ' 받침은 'ㄴ'으로 바꿔서 '문류(文流간)'와 함께 얹혀서 가면 지속적인 힘을 가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 서양문화가 들어올 때 마를린 먼로가 먼저 들어오고 난 다음에 그들의 프래그머티즘이 들어왔다. 고급문화가 먼저 들어오지 않는다. 한류에 '보아'가 나가고 '욘사마' 나가고 그 이후에는 우리는 이런 문화적 전통 속에서 이런 것이 나왔다는 디밀 카드가 있어야 되는데, 그것에 대한 준비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 남아 있다. 그래서 저는 어떤 명목이든지 우리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보이고 있는 전시회를 국가차원이든 민간교류 차원에서 한류가 흘러간 지역에 대대적으로 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그것은 예산이 없어서 못하는 것도 아니고 기회가 만들어지면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우리가 지금 현 시점에서 민족사적인 입장에서 해야 될 가장 큰 일이라고 생각한다.